이주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곳, 라파엘 클리닉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강당에는 다국적 병원이 문을 연다. 벌써 13년 째 진료가 이어지고 있는 ‘라파엘 클리닉’이다.
진료소에는 아직 진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중국, 필리핀,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다양한 나라에서 온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대기실에 걸린 게시판에는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는 안내문이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다.
전통의상으로 화려하게 멋을 낸 나이지리아 여성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자그마한 체구의 중국 여성을 껴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몸’의 아픔을 치료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이주 노동자들의 ‘마음’까지 돌보는 라파엘 클리닉은 1997년 4월 혜화동 성당의 간이 치료소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첫 해 3천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약 12만 명에 이르는 이주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받았다.
<사진설명 : 진료소 내부 모습>
라파엘 클리닉은 격주로 큰 진료일과 작은 진료일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큰 진료일에는 내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치과를 비롯한 20개 과목을 진료하며 35명의 의료봉사자와 120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한다. 큰 진료일에는 보통 300여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진료소를 찾는다. 수십여 명의 환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정된 공간에 모이다 보니 진료소의 모습은 여느 병원과는 달리 분주하고 시끌시끌하다.
라파엘 클리닉 소속 직원들은 노란색 조끼를, 의료 인력은 흰색 조끼를, 일반 자원봉사자들은 초록색 조끼를 입고 있어 복잡한 가운데서도 한 눈에 구별이 가능하다. 복도를 따라가면 산부인과, 내과, 안과 등을 알리는 팻말이 늘어서 있고 책상에 노트북과 진료 기구를 올려놓은 전문의들이 환자를 보고 있다. 복도 양쪽으로 환자들이 자리를 잡으면 한 사람 지나가기도 비좁을 정도의 공간이지만 진료에 나선 의료진들은 불평 한마디 없다.
<사진설명 : 검사전 채혈을 하고 있는 모습>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에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파요.”라며 어눌한 한국말에 손짓?발짓을 총 동원해 증상을 설명하는 이주 노동자들 역시 진지하다.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면 한국어로, 영어로, 몸짓으로 설명을 하느라 더욱 바빠진다. 한국말이 서툰 이주 노동자 곁에는 보다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가진 다른 이주 노동자가 ‘통역’도 해준다. 한국 의료진만 라파엘 클리닉에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온 의사들은 본격적인 진료를 받기 전 예진을 통해 환자들을 살피고, 필리핀어로 통역과 번역을 전담하는 인력도 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다국적이다.
‘무료’를 기본으로 하는 라파엘 클리닉이지만 초음파검사, 심전도검사, X-ray 촬영 등 기초적인 검사가 가능하고 소변, 혈액 검사도 현장에서 바로 할 수 있다. 서울대, 고려대 의과대학이 주축을 이루는 의료진의 규모와 수준 역시 여느 종합병원 못지않다. 또한 기본적인 치료와 약품 처방이 전부인 다른 무료 진료소들과 달리 라파엘 클리닉은 20여 개 병원과 연계해 진료소에서 할 수 없는 검사나 치료, 수술까지도 책임지고 진행한다. 환자의 거주지와 가까운 연계병원을 찾아 연결해주는 팀이 따로 운영되고 있어서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라파엘 클리닉은 혜화동 진료소 외에도 경기 동두천시에 별도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몽골에 해외 의료 캠프를 열어 더 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설명 : 좌측 안규리 라파엘 클리닉 상임이사>
라파엘 클리닉의 시작부터 함께한 안규리 상임이사는 “십년 넘게 라파엘 클리닉에 참여하다보니 이제 일요일 오후에 만나자는 사람이 없다”며 미소 지었다. 안 이사는 경제적인 문제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던 이주 노동자들이 라파엘 진료소를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며 늘 뿌듯함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라파엘 클리닉을 통해 꿈을 키운 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이 이제는 해외로 뻗어나가 빈민국가의 자국민 진료를 가능하게 도와주고 있다.
안 이사는 “몇몇의 사람들이 바탕만 잘 만들어 놓으면 그 위에서 조각보가 이어지듯 서로가 더 큰 나눔을 실천한다.”고 말하며 라파엘 진료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 라파엘 클리닉을 도와주는 일은 우리나라의 이주 노동자들에게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작은 기부와 나눔이 모여 몽골을 비롯한 아시아 빈국의 최 빈민층에게 최상을 진료를 제공하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랑의열매 기자단 2.5기 조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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